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2세 (문단 편집) === 페르시아, 반달족, 훈족 === 페르시아의 왕 [[바흐람 5세]](Varanes, Vahram, Varahan, Bahram)은 421년 테오도시우스2세가 페르시아에서 망명한 그리스도교도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구실로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동로마는 이들의 침략을 단호히 격퇴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 치하에서 동로마는 주기적으로 페르시아, 훈족에게 위협을 받았다. 특히, 훈족은 제국이 페르시아와 전선을 형성할 때마다 어김없이 도나우 강을 건너 침입했다. 실제로 바흐람 5세의 선전포고로 양국이 전쟁을 벌일 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훈족]]의 왕 [[루아]]는 트라키아를 침공했고, 테오도시우스 2세와 동로마는 매년 금 350파운드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그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434년,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반달족과 싸우고 있었다. 이에 테오도시우스 2세는 서로마를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지원했는데 부대는 패했고, 훈족의 루아는 동로마 전력의 공백을 틈타 평화유지비로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때 루아가 갑자기 죽었고, 새로운 후임자 [[블레다]]는 연례 공납금으로 700파운드로 증액하여 받아내었다. 440년, 반달족을 공격하기 위해 동로마의 다른 대병력이 서로마로 떠난 사이, 페르시아가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동시에 블레다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테오도시우스 2세는 442년 페르시아 군대를 완전히 격퇴했지만, 한동안 블레다에 대해서는 많은 도시들이 유린되고 로마인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묵인해야만 했다. 동로마는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할 준비를 하다가 결국 443년 블레다에게 금 6000 파운드를 일시불로 지불하고 매년 2100파운드라는 살인적인 공납금을 바치는 조건으로 마무리되었다. 447년, 동로마는 아틸라의 공격을 받았다. 훈족은 동로마군을 쳐부순 다음 도나우 강 유역의 로마 점령 지대를 5일간 여행할 길만큼 비우라고 요구했다. 이에 449년 실권을 쥐고 있던 크리사피우스는 아틸라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사피우스의 이런 시도는 아틸라의 응징보다는 훈족의 공격대상을 바꾸게 만들어 아틸라는 공격의 칼을 서쪽으로 돌려 이동했다. 계속되는 굴욕 속에서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부자들과 원로원 의원들은 훈족에게 바치는 거액의 공납금에 대해 분노했다. 이들은 크리사피우스의 정책들로 부담해야하는 금액들이 자신들이 부담해야 된다는 것에 더 화를 냈다. 또한 크리사피우스의 아틸라 제거 계획도 실패하면서 제국의 위신이 떨어졌다는 것도 이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결국 크리사피우스는 위신이 크게 추락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